
97년 3월 서초동 국제전자센타가 개관되고
금강전자 서초점은 4월에 개업했습니다.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저보다
10살 정도 많아 보이는 손님이 사모님과
같이 오셔서 오디오 상담을 하셨습니다.
“천만 원 정도 들여서 업그레이드될까요?”
사용 기기에 따라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어서 기기를 여쭤보았습니다. 사용 기기는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HW, 매킨토시 C40,
MC2600, 프로시드 PDT & PDP 3의 분리형
CDP 등이었습니다. 사용하시는 기기들 모두
내놓고 천만 원을 추가하면 다운그레이드나
옆(?)그레이드가 되어 가장 떨어지는 CDP에
몰아서 투자하시라고 권했습니다. 디지털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여 상종가를 올리던
와디아를 권했습니다.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인연이 시작되었지요. 이듬해 앰프,
다음 해엔 스피커를, 또 아날로그 소스 등
몇 해에 걸쳐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의대 교수님이십니다.

또 다른 한 세트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사용하실 오디오였습니다. 밥은
드시지 않아도 살 수 있지만, 음악을 듣지
않으면 사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공기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만큼 중요한
것이 공기 중 흐르는 음악의 선율이었습니다.
작은 집에 맞는, 그리고 댁에 사용하시는
것과 다른 소리와 디자인을 원하셨습니다.
댁에 사용하시는 스피커가 다인오디오이니
아방가르드가 좋을 것으로 생각하셔서
가장 작은 우노 피노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맞는 앰프와 CDP, 그리고
가장 아끼는 LP를 듣기 위하여 player를
장만하셨습니다. 그 후 몇 번에 걸쳐서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발전시키셨습니다.

LP를 좋아하셔서 저희 매장 앞에 위치한
음반 가게에 오시면서 음반보다는 주인인
U사장님을 더 좋아하시게 되어, 이따금
오셔서 저와 셋이서 식사를 하십니다.
반주로 막걸리를 꼭 곁들이면서요.
얘기 중 간혹 시골집에 가서 하룻밤 같이
보내자고 하십니다. 음식 취향이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비슷해서 부담스럽지 않고,
아니 아주 즐거우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1월 교수님의 시골집에 내려갈 일이
생겨서 U사장님과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몇 번 가보았지만 같이 밤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고, U사장님은 처음 가십니다. 저녁은
밖에서 해결하자고 하시더니 처음 오는
사람들 ‘밖의 음식’은 아니라고 하시면서
돌솥밥에 국, 반찬을 맛있게 준비하셨습니다.
물론 막걸리도 좋은 것으로 준비하셨고요.

잔잔하게 음악을 켜놓고 식사하면서
막걸리 잔 기울이는데 밖엔 눈이 내립니다.
마음이 통하는 세 남자가 막걸리에 취하고
음악에 녹아들고 눈 내리는 분위기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난로에서는
장작불이 은은히 타오르고요. 설거지는
막내인 제가 담당했습니다.
식사 후 차를 한 잔씩 하면서 시작도 끝도
없는 얘기는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다음날을 위하여 눈을 붙여야
했습니다. 혹시 코를 골지도 몰라 제가 제일
작은 골방, U사장님은 거실, 안방엔 교수님이
주무셨습니다. 각자 이불까지 준비하셨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설국으로 변해
눈 속을 뛰어다니는 강아지 같은 마음입니다.
커튼을 걷으니 동양화 한 폭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는 것도 행운이었습니다. 교수님은
분위기에 맞춰 ‘Snow Jazz’를 켜셨습니다.
센스 만점, 분위기는 따따블!!!!

교수님 주무신 안방은 창이 낮습니다.
낮게 드리운 창을 통해 들어오는 雪花는
창가에 놓인 陶瓷와 함께 아름다움의 極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雪花는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그림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음악과 그림 그리고 사람.

아침도 손수 준비하셨습니다. 전날의 숙취를
고려하여 황태 누룽지탕으로 준비하셨습니다.
푹 끓여서 세 남자 창밖을 보면서 먹는데
이런 호사 언제 또 누릴 수 있을까요?
초대해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음식을
준비하고 배려하신 마음 정말 고맙습니다.

눈은 계속 내립니다. 온통 새하얀 세상처럼
지금 이 순간만큼은 순수 그 자체였습니다.
설거지는 막내인 제가 또 했습니다. (ㅋㅋ)
그래도 무지 행복했습니다.
서울로 오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얀 눈 속 仙境과 같은 곳을 떠난다는 것이,
아니 행복한 세 사람이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봄이 오면 다시 뭉치기로 하였습니다.
산이 신록으로 물들면 우리 마음은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 한껏 즐길 준비를 하고선
입을 즐겁게 할 맛있는 곡차를 마시면서,
귀를 기쁘게 할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봄이 오면 또다시 뭉치기로 하였습니다.
그날이 빨리 오길 학수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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