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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천태만상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파워케이블에 대한 오디오파일의 견지는 지금과 상당히 달랐다. 기본적으로 스피커 케이블에 대해 많은 예산을 투입했고 그다음이 인터케이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원 케이블을 업그레이드했다. 오히려 전원 케이블보다 차폐 트랜스 같은 전원 장치를 더 중요시했다. 전원을 바라보는 가치 비중의 차이에서 온 결과들이다. 예를 들어 전원 장치도 그런 맥락 위에서 볼 때 이해될 수 있다. 과거엔 차폐 트랜스나 정전압 유지 또는 쵸크 트랜스를 활용한 RGPC 계열이 대세였고 소수의 AC 리제너레이터가 있었다. 멀티탭보단 이런 전원 장치를 많이 활용했고 의외로 멀티탭 같은 경우는 저렴한 제품을 사용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회로를 내장한 전원 장치보다는 멀티탭 활용이 늘었다. DC 필터 등 여러 회로를 내장한 전원 장치가 다이내믹스 폭을 저하시켜 음악적 생동감을 감쇄시킨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후 AC 리제너레이터가 다수 출시되기도 했지만 그런 음질적 부분에선 여전히 문제점을 가진다. 결국 벽체 직결이 가장 좋았고 적어도 파워앰프나 인티앰프는 벽체 직결이 대세였다. 필자 또한 앰프류는 벽체 직결, 나머지는 전원 장치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을 마치 공식처럼 여겼으니까.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라. 옥내 전원 품질이 아주 나쁘지 않은 경우엔 대부분 멀티탭을 사용하며 그 가격도 과거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에 따라 반사효과를 얻은 것은 파워케이블이다. 요즘 꽤 많은 사람이 옥내 배전반을 오디오용으로 교체하는가 하면 때로 어떤 오디오파일은 오디오용 배전반을 따로 설치하기도 한다. 멀티탭의 경우도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대가 출시되기도 한다. 여러 전원 장치의 존재에 가려져 있던 파워케이블의 성능은 과거에 비해 더 낱낱이 발가벗겨졌다. 이런 인지 방식의 상대적 관점 차이는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갔고 점점 진화의 엑셀을 밟았다. 당연히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라간 초하이엔드 전원 케이블이 출시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케이블로 전 세계 하이엔드 오디오 케이블 부문을 들썩이게 만든 것이 바로 쿠발라 소스나다. 마치 무슨 주문을 외우는 듯한 이름이지만 사실 이 브랜드 네이밍은 단순하다. 조 쿠발라와 하워드 소스나라는 두 명이 자신들의 이름을 따 만든 것이다. 하워드 같은 경우엔 본래 어려서부터 오디오 DIY를 하며 취미로 하이파이 오디오를 즐겼던 천상 오디오파일이다. 자라면서 더욱더 오디오 취미가 깊어졌고 결국 본업인 외과 의사와 케이블 관련 일을 병행하게 되었다. 한편 조 쿠발라는 철저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으며 그 또한 앰프를 만드는 등 오디오파일로서 오랜 세월을 보내온 인물이다. 동네 어귀에서 쉽게 마주칠 법한 인상 좋아 보이는 이 두 명의 의기투합은 초하이엔드 케이블 쿠발라 소스나를 잉태했다.
마치 영웅들의 전기를 읽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이들의 사악한 가격대를 보면 어떤 자신감이 이들의 케이블 성능을 뒷받침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최상위 Realization을 보라. 두꺼운 두께에 검은 피복 그리고 돈만 주면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을법한 단자 그리고 수공으로 작업실에서 뚝딱뚝딱 만든 것 같은 슬리브 처리 등이 보인다. 절대 비싸 보이지 않는 디자인에 오히려 아연실색하게 된다. 그러나 2004년 CES 참관을 계기로 전 세계 하이엔드 오디오 메이커 및 오디오파일에게 선보인 이후 쿠발라 소스나는 서서히 인정을 받게 된다.
Realization 그리고 OptimiZ3™
쿠발라 소스나는 평단과 오디오파일로부터 그 성능에 대해서 크게 인정받았다. 그러나 요즘 같은 시대에 비밀은 없으며 기술적 세부 지표들이 설득력이 없을 경우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쿠발라 소스나는 그들의 세부적인 지오메트리에서 그 성능에 대한 열쇠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다만 올해 내한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 그들이 몇 가지 단서를 남겼다. 쿠발라 소스나가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는 OptimiZ3™가 바로 그 핵심에 있다. 이는 현재 쿠발라 소스나가 RevolutionZ™에 이어 개발한 OptimiZ™ 기술의 최전선이다. 그리고 3세대 OptimiZ™는 기존까지 진화시켜왔던 내용에서 도체, 굵기, 지오메트리, 유전체 소재와 차폐 형식 등 모든 면을 혁신했다.
OptimiZ3™의 핵심은 매우 낮은 커패시턴스와 인덕턴스의 비율에 있다. 실제로 그들은 홈페이지에서 OptimiZ3™의 핵심인 이 비율을 그래프로 살짝 공개해놓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매우 낮은 인덕턴스, 즉 최소한의 유도 용량을 구현함으로써 커패시턴스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게 순수한 신호를 막힘없이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요점이다. 여기에 낮을수록 좋은 임피던스에 대한 부분에서도 쿠발라 소스나는 자랑한다. 임피던스를 최저치로 낮추어 신호 전송에 있어 가장 이상적인 특성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업 & 리스닝 테스트
과연 쿠발라 소스나의 주장은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실제 측정해서 수치로 보여줄 자신은 없으나 음질적으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가 가는 것은 사실이었다. 테스트는 사실 기존에 YG 어쿠스틱스 헤일리 스피커 및 MSB 다이아몬드 V DAC 그리고 입실론 Aelius 모노블럭 파워앰프를 사용해 테스트해본 바 있다. 이번엔 오직 Realization 파워케이블만을 앰프 쪽에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추가로 이번엔 케프 R11 스피커 및 심오디오 390 그리고 870A 파워앰프를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았다.
Anne Bisson - Da Unten im Tale in D-Flat Major (Pop)
Tales from the Treetops
우선 대역 밸런스와 음상, 포커싱 등을 알아보기 위해 앤 비송의 ‘Da Unten im Tale’을 재생했다. 물론 여타 곡들을 테스트했지만 앤 비송의 레코딩에서 그 영향이 가장 두드러졌다. 예를 들어 심오디오 390에 적용했을 때 전체 균형감은 낮은 쪽으로 하강해 전체적으로 차분한 토널 밸런스를 형성한다. 매우 유연한 엔벨로프 특성을 보이며 무대 또한 후방으로 물러난다. 한편 870A 파워앰프에 적용했을 경우 확실히 무게감 및 두께 표현이 압도적으로 상승한다. 더불어 보컬의 음상은 계조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디지털 음원 재생이지만 디지털의 피로감이 감쇄해 자극 없는 아날로그 사운드를 지향하는 모습이다.
Patricia Barber - Regular Pleasures
Verse
저역 해상도 및 전체적인 표현력은 나의 레퍼런스 청취 곡 중 파트리샤 바버의 ‘Regular Pleasures’에서 상세하게 포착되었다. 예를 들어 심오디오 390에 파워케이블을 적용했을 경우 바닥을 치고 오르는 저역이 굵고 육중하다. 그러나 산뜻하고 가볍게 치는 타입이 아니라 진하게 깔리며 탄력감이 뛰어난 저역이다. 한편 870A 파워앰프에 적용했을 경우엔 저역이 더 낮은 대역까지 해상도가 높아지며 그 깊이 감을 더한다. 더불어 강력한 저역에 묻히기 쉬운 중고역 주파수 응답도 뚜렷하게 구분되어 들린다.
Rafael Fruhbeck De Burgos, New Philharmonia Orchestra
Albeniz : Suite Espanola Asturias
Albeniz : Suite Espanola
다이내믹스 특성이나 엔벨로프 특성에 관해서는 여러 대편성 교향곡을 재생했으나 의외로 가장 오래된 레코딩인 [Suite Espanola] 데카 녹음이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우선 심오디오 390에 적용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는 직선이 아닌 곡선을 그리는 엔벨로프 특성이다. 더불어 다이내믹스 부분에서는 세부 표현에 있어 미세 약음 대비가 다층적으로 표현되어 보다 생생하게 들린다. 870A에서는 마이크로 다이내믹스 부분은 물론이며 거시적인 관점에서 커다란 타격음들이 최고조로 대비되며 상승 무드를 그린다.
Jan Kraybill
Organ Polychrome : The French School
Realization 적용 시 공통된 특성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드러운 쾌감’이다. 음악은 어느 때보다 더 짜릿하고 더 커다란 스케일을 눈앞에 그려낸다. 사운드 스테이징의 표현 양상 및 저역의 깊이, 정확한 옥타브 표현력 등 이 모든 것들은 얀 크레이빌의 [Organ Polychrome] 앨범 첫 곡부터 확실히 다른 세계의 전원 케이블임을 증명한다. 저역 구간의 정확한 옥타브 구분 및 각 악기의 미묘한 강, 약 대비를 통한 실체감이 대단하다. 특히 파이프 오르간의 저역 끝을 부여잡고 끈질기게 추적하는 능력 등은 발군이다. 눈치챘겠지만 모든 부분에서 프리 겸 DAC 내장 네트워크 스트리머로 사용한 심오디오 390보다는 870A 파워앰프에 적용했을 때 음질 변화 폭이 훨씬 더 크다.
총평
현시점에서 쿠발라 소스나는 뉴 레퍼런스 하이엔드 시스템의 혈관을 급속도로 잠식해나가고 있다. YG 어쿠스틱이 추천하는 케이블이고 이 외에 여러 메이커가 자사의 제품에 쿠발라 소스나를 추천하고 나섰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이 분야에서 미국의 GTT 오디오 같은 딜러는 아예 YG 어쿠스틱스와 오디오넷, 크로노스 오디오 등을 메인 시스템으로 내세우면서 케이블을 오직 쿠발라 소스나로 통일해 판매하고 있기도 하다.
과거 아발론과 스펙트랄 오디오 또는 윌슨오디오와 트랜스페어런트가 그랬듯 YG 어쿠스틱스와 쿠발라 소스나가 레퍼런스 매칭의 반열에 올랐다. 널리고 널린 전통적 파워케이블의 제한된 성능으로부터 일탈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쿠발라 소스나 Realization은 전원에 대한 유레카 모멘트를 경험시켜줄지도 모른다. 투박한 외관이나 자비 없는 가격을 문제 삼는다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음질만큼은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만일 제한 없이 파워케이블에 예산을 쓸 수 있다면 Realization은 지금까지 본 파워케이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넣을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Written by 오디오 칼럼니스트 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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