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룡 - Golden [180g LP]
김범룡세일뮤직(Sail Music)2021-05-31
음반 소개
김범룡 - Golden [180g Black Vinyl]
'80년대 대중가요계를 대표하는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가요톱10 골든컵을 수상한 메가 히트곡 <바람 바람 바람>, 에절한 발라드 <겨울비는 내리고>, 다운타운씬에서 무한 애청된 <그 순간>, <슬픔만 주고>, 뉴웨이브 사운드를 적극 도입했던 <그대는 미운 사람>, 중반기 히트곡인 <카페와 여인>, <현아>, <마지막 입맞춤> 등 김범룡의 최전성기를 담은 노래들로 오리지널 릴마스터 테이프, 디지털 리마스터링 제작으로 구성된 베스트앨범!
김범룡 최전성기를 증명하는 창작곡으만 꾸며진 베스트앨범
바람처럼 등장한 김범룡은 1980년대 중후반을 대표하는 인기가수였다. 엄청난 성공신화를 기록한 그의 정규 1집과 첫 히트곡 <바람 바람 바람>은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존재가치는 인기가수를 넘어 자신에게 최적화된 창작곡을 발표한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점에서 빛을 발한다. 이번 베스트앨범에는 김범룡의 최전성기인 1집부터 4집 수록곡 중 동시대 대중에게 사랑받았던 노래들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전곡을 김범룡의 창작곡으로만 선곡한 기획은 싱어송라이터로서 그의 존재가치를 환기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각종 대학생 경연 대회에서 수상
김범룡이 이미 대학생 시절에 데뷔한 사실을 아는 대중은 많지 않다. 고교생 시절부터 작곡을 시작했던 그는 충북대 미대 서양화과 재학 시절 캠퍼스 밴드 '소용돌이 2기'의 리드 기타와 보컬로 활동했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공식 데뷔 무대는 1979년 MBC 주최 청주 가요제로 자작곡 <젊은 그림자>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1981년 KBS 3라디오에서 개최해 연포해수욕장에서 열렸던 연포가요제 '사랑의 듀엣 쇼'에는 남성 듀엣 빈 수레로 출전해 자작곡 <인연>으로 우수상을 연속 수상하는 재능을 과시했다. 이 대회는 김범룡을 비롯해 공동 우수상을 받은 배따라기의 이해민, 최우수상을 받은 남성 듀엣 혁과 준의 김혁 등을 동시에 배출했다. 직업 가수가 되려는 마음이 없었던 김범룡은 수상 후에 군대에 다녀왔다.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던 그는 가세가 기울면서 대학 3학년이 되어 뒤늦게 프로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 그의 본격 가수 활동이 늦어진 이유이다.
단숨에 최고 인기가수로 등극
김범룡이 최고 인기가수가 되기에는 1985년 발표한 첫 독집 한 장으로 충분했다. 정규 1집과 2집은 제작사가 다른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초반은 대성음반, 재반은 서라벌레코드에서 발매했다. 이번 베스트앨범에는 1집 수록곡 3곡이 선곡되었다. 그의 첫 히트곡인 <바람 바람 바람>은 KBS「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해 골든컵을 수상한 메가 히트곡이다. 이 노래로 인해 김범룡은 1985년 KBS 가요대상과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남자 신인가수상을 휩쓸었다. 1985년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최고 인기가수상은 조용필이 차지했지만, 최고 인기가요상은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김범룡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후속곡 <겨울비는 내리고>가 1986년 2월「가요톱10」에서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빠른 리듬의 <바람 바람 바람>과 서정적인 발라드 <겨울비는 내리고>에서 보듯, 김범룡은 빠른 곡과 애절한 발라드가 적절하게 안배한 선곡으로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이끌어냈다. 차트 정상에 오르진 못했지만 신디사이저 사운드가 펑키 한 리듬을 이끄는 업 템포의 <그 순간>도 라디오와 다운타운에서 무한 애청되었다.
가창력의 약점을 뛰어넘은 송라이팅 능력
서정과 열정을 아우르는 여성에 필적할 고음역 창법을 구사했던 김범룡은 혀가 약간 짧은 특유의 발음에 약점이 있었다. 하지만 뛰어난 송라이팅 능력은 가창력의 약점조차 가리게 했다. 정규 1집에서 변영표 작곡의 <밤의 플렛트 홈>과 이승대 작곡의 연주곡 <기억>을 제외한 전곡이 김범룡의 창작곡이다. 그는 다른 가수들의 히트곡도 많이 만들었다. 이선희의 <그대여>, <불꽃처럼>, 양수경의 <당신은 어디 있나요>, 규리의 <오늘 밤엔>,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 등은 김범룡이 작곡해 빅 히트했던 동시대를 대표하는 히트곡들이다.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던 김범룡은 1985년 영화 '졸업여행'에 이미숙과 함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 연기재능까지 뽐냈다. 특히 <이젠 말할 수 있네>는 영화 속 라이브의 한 장면으로 삽입되어 이미 빅 히트의 조짐을 보였으며, 이 곡은 정규 2집의 주제가로 발표되었다.
희귀 팬클럽용 2집의 사진으로 제작된 베스트앨범
정규 2집은 게이트 폴드로 제작한 팬클럽용 초반과 커버 디자인이 다른 싱글 재킷의 재반이 공존한다. 초반은 김범룡의 공연 사진 3장으로 커버를 장식했다. 내면에는 초대형 사인과 김범룡의 인사말이 장식되었는데 전반적으로 다소 산만한 디자인으로 꾸며져 있다. 김범룡이 발표한 많은 정규 앨범 중 가장 희귀한 버전이다. 그에 반해 재반 커버는 야성적 느낌의 김범룡 사진으로 수정해 깔끔하게 제작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김범룡 정규 2집의 재킷은 재반이다. 이 베스트앨범의 커버는 팬클럽용으로 제작된 정규 2집 초반에만 실린 사진을 가지고 제작되었다.
동시대의 트렌드를 소화한 창작 재능
정규 1집으로 단박에 스타덤에 오른 김범룡은 1986년 발표한 정규 2집에 수록된 전곡을 창작하는 재능을 과시했다. 이번 베스트앨범의 2집 수록곡은 <님 떠나가네>, <그대는 미운 사람>, <이젠 말할 수 있네>, <슬픔만 주고>, <말이 없던 소녀> 등 가장 많은 5곡이 선곡되었다. 그 중에 <그대는 미운 사람>, <이젠 말할 수 있네>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소포모어 징크스도 그에겐 통하지 않았다. 2집에서 김범룡은 펑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결합하는 시도를 선보이며 지상파 TV를 점령했다. 특히 <그대는 미운 사람>과 <외로움은 싫어> 등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뉴웨이브 사운드를 적극 도입했던 신선한 노래였다. 김범룡은 자신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창작곡과 동시대 대중이 호응했던 트렌드에 민감했던 대중적 성향의 싱어송라이터였다. 1, 2집의 연속 히트로 김범룡은 1986년 KBS 가요대상 남자 가수 후보로 올랐고 2년 연속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탄탄대로를 내달렸다.
전 곡을 자작곡으로 채운 3집
정규 3집도 전 곡을 자작곡으로 구성했다. 이 베스트앨범에는 3집에서 <카페와 여인>, <현아>, <내 사랑 모니카> 등 3곡이 선곡되었다. 그 중 <카페와 여인>과 <현아>가 히트하며 거침없는 인기행진을 벌였다. <카페와 여인>은 1987년 KBS「가요톱10」 9월 2일부터 30일까지 5주 연속 1위를 차지한 공전의 히트곡이다. 이 곡은「가요톱10」에서 1집 <바람 바람 바람>에 이어 5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두 번째 노래로 기록되었다. 차트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애절한 절규가 담겨 있는 <현아>도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현아>의 제목은 21살 대학생 김범룡과 교제했던 여성의 실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현아와 헤어진 후 사흘간 술을 마셨고, 사흘째 되던 날 만든 노래"라며 밝혔다. <내 사랑 모니카>는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는 아니지만 김범룡 특유의 색채가 담겨 있는 히든 송이다.
4집 이후 인기 하락세
김범룡은 <카페와 여인>, <현아> 2곡의 빅 히트로 1987년 골든디스크상 본상을 수상했다. 1987년은 가왕 조용필이 '가수왕 수상 포기'를 선언했던 해로 MBC 10대 가수상 시상식이 열리지 않았다. 이에 경쟁이 치열했던 KBS「가요대상」에서 대상은 전영록, 올해의 가수상은 김범룡이 차지했다. 하지만 4집 이후 김범룡의 인기는 급격하게 하강곡선을 그렸다. 이번 베스트앨범에 4집 수록곡은 <마지막 입맞춤> 한 곡이 선곡된 이유이다. 1985년 1집 이후 5집까지 매년 정규 음반을 발표했던 김범룡은 1992년 7집 이후 활동을 중단하고 기획사를 창립해 후배 양성에 몰두했다. 2003년 정규 8집으로 컴백했던 김범룡은 애절한 발라드와 어깨를 들썩이게 만드는 비트 강한 노래에 강점을 발휘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이 베스트앨범은 김범룡의 최전성기를 증명하는 진수가 모두 담겨 있다.
글=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180g 중량반 *24Bit 디지털 리마스터링 *폴리 페이퍼 이너슬리브
*Gold Color, Black Vinyl - 2가지 색상 각 250장 한정 제작 *수입 제작 (Germany)
*전곡 오리지널 원곡 버전 *오리지널 릴마스터 음원 사용
*본 상품은 생산단계에서의 불량 외에는 단순 반품이나 배송 과정에서의 파손으로 인한 반품은 불가합니다 (단순반품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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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 1-1. [SIDE A] 바람 바람 바람
- 1-2. 겨울비는 내리고
- 1-3. 그 순간
- 1-4. 님 떠나가네
- 1-5. 그대는 미운 사람
- 1-6. 이젠 말할 수 있네
- 1-7. [SIDE B] 카페와 여인’
- 1-8. 말이 없던 소녀
- 1-9. 슬픔만 주고
- 1-10. 현아
- 1-11. 내 사랑 모니카
- 1-12. 마지막 입맞춤

최안순 / 흰구름 - 안개 낀 터미날 [180g LP] = 44.600 원
최안순세일뮤직(Sail Music)2021-05-31
음반 소개
70년대를 풍미했던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 출신 최안순의 히트작
70년대 포크 1세대 인기가수 최안순의 히트곡이 총망라된 베스트앨범이다.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 활동을 중단하고 솔로 가수로 독립한 그녀는 오아시스레코드로 전속사를 옮겨 <산까지야>를 히트시키며 음악 인생에 전기를 마련했다. 46년 만에 LP 포맷으로 다시 발매된 이 음반은 활동 범위가 학생층으로 제한적이었던 포크가수 활동에서 벗어나 폭넓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인기가수로 성장했던 최안순의 최전성기를 증명하는 히트작이다.
최안순의 데뷔 시절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가수였지만 활동을 중단한지 오래된 최안순의 이름을 기억하는 대중은 중장년층으로 국한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안순 LP의 재발매는 대중의 기억에서 삭제된 70년대를 풍미했던 중요 가수의 소환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49년 8월 28일 서울에 태어난 최안순은 남대문 초등학생 때 서라벌예대 음대 교수에게 레슨을 받으며 탄탄한 음악 기본기를 닦았다. 성신 여중고 재학 시절엔 합창단 활동을 하며 음악 내공을 쌓았던 그녀는 대학 입시 실패 후 진로 문제로 고민했다.
그때 뮤지컬 악단인 청포도 가무단의 단원 모집 광고를 보고 오디션에 참가했다. 우연하게도 초등학교 시절 자신에게 동요 레슨을 사사했던 은사인 권형집 교수가 오디션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다. 반갑게 조우한 스승과 제자는 다시 뮤지컬 무대로 음악 인연을 이어갔다. 청포도 악단은 재정난으로 인해 1년 후에 해산했다. 이때 악단에서 기타 연주를 익혔던 최안순은 악단의 총무 장상덕의 소개로 여성 멤버의 공백으로 고심 중이던 혼성 듀엣 라나에로스포(개구리와 두꺼비)의 리더 한민을 만났다. 라나에로스포의 3대 여성 멤버가 된 그녀는 2집 녹음에 참여해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최안순은 <사랑해>의 빅 히트로 인해 1대 여성 멤버 은희와 원곡 가수 논란을 빚으며 화제를 모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6개월 만에 그룹 활동을 접고 솔로 가수로 독립했다.
7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가수
최안순은 1971년 작곡가 김인배가 기획한 캐럴과 포크 음반 2장을 대도 레코드에서 발표했지만 판매 성적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에 '모깃소리'로 불렸던 가냘픈 음색을 지닌 그녀의 솔로 가수 활동에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지만 포크가수로는 어느 정도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혼성 듀엣 시절 최안순의 모습은 연예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긴 생머리에 굵은 뿔테안경을 착용한 순수한 이미지는 포크가수의 전형이었다. 솔로 가수로 독립한 후 그녀는 과감하게 안경을 벗고 청순미 넘치는 외모와 맑은 음색의 노래로 주목받았다. 1972년 오아시스레코드로 전속을 옮겨 인기가수로 성장할 계기를 마련했다. 메이저 음반사에 전속되어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최안순은 1972년부터 1974년까지 3년 동안 자신의 음악 여정에서 가장 많은 앨범을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비록 그녀의 앨범들은 수록곡이 중복되고 커버 사진만 교체되어 발매된 중복 버전이 많은데 그만큼 인기가 많았다는 증거이다. 가냘픈 몸매와 여성미 넘치는 참한 외모와 무엇보다 박인희에 필적하는 아름다운 음색을 지녔던 최안순은 70년대를 풍미했다.
최안순의 대표곡 <산까치야>
47년 만에 재발매된 최안순의 이번 독집은 1972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순수한 이미지를 깨는 화장을 한 최안순의 화려한 사진으로 커버가 교체된 1973년 재발매 버전이다. 10곡이 수록된 초반과는 달리 이 앨범은 <흰 구름>과 <사랑하고 싶은데> 2곡이 추가되어 있다. 초반과 재반 모두 이제는 희귀 고가 음반으로 대접받는다. <엄마별 아빠별>, <선생님>, <종이배 만들어>, <안개 낀 터미널>, <목련 꽃> 등 수록곡들은 전반적으로 가냘프면서 슬픔을 머금은 음색으로 부른 편안한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최대 히트곡은 정주희 작사 작곡의 <산까치야>이다. 맑은 목소리와 동심을 자극하는 순박한 가사가 담긴 이 노래는 발매 5개월이 지나면서 예상을 뛰어넘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산까치야>는 1972년 처음 발표 당시에는 제목이 <산까치>였지만 가사의 첫 소절이 회자되면서 자연스럽게 제목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가요 차트 정상에 오른 이 노래의 히트로 인해 최안순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산까치야>는 최안순의 음악 여정에서 도약의 전기를 마련해 준 첫 솔로 히트곡이자 대표곡이 되었다. 사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그녀를 위해 준비된 곡은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정훈희와 남성 듀오 에보니스가 그녀보다 유력한 후보자였다. 최안순은 <산까치야>를 취입할 기대조차 못한 처지였지만, 신선한 보컬 매력을 높이 평가했던 오아시스레코드는 그녀를 최종 선택했다. 최안순은 1975년 오아시스레코드의 경쟁사인 지구레코드로 스카우트되었을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76년까지 앨범과 공연, 방송 활동을 왕성하게 펼쳤던 그녀는 결혼과 함께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CCM 가수로 거듭나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 오리지널 릴 마스터 테이프 사용
* 180g 중량반
* 24Bit/192kHz D4A Sound 디지털 리마스터링
* 오아시스 레코드 명반 재발매 시리즈
* 폴리 페이퍼 이너슬리브
* 수입 제작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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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미한 커버 구겨짐/얼룩 등으로 인한 사유는 교환 반품이 되지 않습니다.
수록곡
- 1-1. [Side A] 흰구름
- 1-2. 사랑하고 싶은데
- 1-3. 산까치야
- 1-4. 바람개비
- 1-5. 사랑의 집
- 1-6. 엄마별 아빠별
- 1-7. [Side B] 안개 낀 터미날
- 1-8. 그림자 하나
- 1-9. 선생님
- 1-10. 나의 인형
- 1-11. 종이배 만들어
- 1-12. 목련꽃

허림 / 인어 이야기 - 귀향 [180g 투명 Dark Green 컬러 LP] = 44.600 원
허림세일뮤직(Sail Music)2021-05-31
음반 소개
애절한 포크송으로 심금을 울린 70년대 1세대 포크가수 허림의 컴백 베스트 앨범
허림은 70년대 통기타 전성시대에 활약했던 인기 포크가수였다. 매력적인 음색과 뛰어난 가창력으로 여러 히트곡을 남긴 그녀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타 여성 포크가수들에 비해 연구와 평가가 미진한 상태로 남아 있다. 허림은 슬픈 개인 가정사로 인해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지 못했고 90년대 이후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고운 음색으로 노래한 허림의 슬픈 포크송을 기억하는 포크 팬은 여전하다. 현재 그녀의 모든 LP들이 중고 음반시장에서 고가의 희귀 포크 앨범으로 거래되고 있는 이유이다. 연극배우 허남실의 외동딸로 태어난 허림은 동국대 연극 영화과 재학 당시인 1968년부터 미8군 무대에서는 드물게 통기타를 치며 노래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그녀는 8군 쇼단과 함께 동남아 순회공연까지 다녀온 특이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녀는 ‘이야기 가수’라는 별칭을 지녔는데 대표곡인 <인어 이야기>를 비롯해 <별 이야기>, <엄마 이야기>, <사랑 이야기> 등 ‘이야기 시리즈’ 노래들이 70년대 학생층에 높은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뉴스타 팝 그랑프리 경연 대회 대상 수상
1972년 일반 무대로 진출해 발표한 허림의 데뷔 앨범에는 맑고 순수한 70년대의 전형적인 포크송들이 담겨있다. 포크가수 심현우의 기타 연주에 노래한 번안 곡 <별 이야기>가 학생층에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녀의 이야기 연작 노래의 출발점이었다. 데뷔 앨범 발표 후인 1972년 8월 허림은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주간경향컵 쟁탈 뉴스타 팝 그랑프리 경연 대회에 참가했다. 팝 여자 가수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화여대 미대의 정미조와 함께 포크 여자가수부문 대상을 수상한 그녀는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제법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만 음악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다. 당시 결혼한 유부녀였던 그녀는 슬픈 가정사로 인해 정상적인 음악 활동이 불가능해 긴 공백기에 들어갔다.
인어 이야기의 제작 과정과 허림의 컴백
생전의 작사가 박건호는 1996년 발간한 자신의 저서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에서 <인어 이야기> 창작 과정과 허림을 컴백시킨 이야기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1973년 서울 명동의 스탠드바에서 김기웅을 만나 담소를 나누던 그는 현장에서 짧은 가사 한 편을 썼다. 글을 읽은 김기웅은 즉석에서 멜로디를 붙여 노래 한 곡을 탄생시켰다. 이렇듯 <인어 이야기>는 불과 30분 만에 즉흥적으로 탄생된 노래이다. 서정적인 노래를 부를 가수로 박인희를 염두에 두었지만 이미 신보 녹음을 마친 상태라 다른 가수를 찾아야 했다. 이후 박건호는 한 잡지사 사진기자의 수첩에서 허림의 이름을 발견했다. 작곡가 변혁의 집에서 들었던 그녀의 감성적인 노래가 기억났다. 적임자란 직감에 보광동 버스 종점에 있던 그녀의 집으로 찾아간 박건호는 2년의 공백을 깨는 활동 재개 약속을 받아냈다.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우여곡절을 겪은 허림의 컴백 앨범은 1974년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녹음과 취입이 결정되었다.
전성기를 안겨준 허림의 컴백 앨범
46년 만에 재발매된 이 앨범의 초반은 실물 접견이 쉽지 않은 희귀 앨범이다. A면은 작곡가 김기웅과 작사가 박건호가 협업한 창작곡들이 중심을 이룬다. 당시 포크송 창작에 관심이 지대했던 김기웅은 허림을 위해 6곡을 창작했고 편곡 작업까지 맡았다. 앨범의 문을 여는 <인어 이야기>는 허림의 이야기 연작 노래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대표곡이다. 이 노래는 조안 바에즈와 음색과 멜로디 진행에서 흡사해 허림에게 ‘한국의 조안 바에즈’라는 상찬을 안겨주었다. 허림의 매력적인 가창이 담겨 있는 <연꽃>도 애잔한 노래이다. 김기웅이 작사 작곡한 <바람아>도 추억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70년대 스타일의 멜로디 라인을 지녔다. <밤하늘 가에>는 당시로는 드물게 관악기 클라리넷 연주가 등장한다. 건전가요풍의 <둥글둥글 한세상>은 앨범에서 가장 경쾌한 분위기를 들려준다. 김기웅이 작사 작곡한 <밤하늘>은 서정적인 분위기로 A면을 잔잔하게 마무리한다. 창작 신곡으로 구성된 A면과는 달리 B면은 번안곡과 리메이크 노래들로 채워져 있다. 익숙한 멜로디인 <귀향>은 드보르작의 <꿈속의 고향(Going Home)>을 박건호가 개사했다. <등대지기>는 친숙한 영국 민요이다. 박인희에 비견될 아름다운 가창을 들려주는 <모닥불>은 작사가 박건호의 첫 히트곡이기도 하다. 번안곡 <비가 내리면>는 B면에서 가장 경쾌한 포크송이다. 김민기의 포크 명곡 <아침이슬>은 통기타가 아닌 밴드 세션 편곡에 허림의 샤우팅 창법이 등장해 새로운 감흥을 안겨준다. 엔딩곡 <세노야>는 ‘김광’ 작곡으로 표기되었지만 서울대 음대 작곡과 출신 ‘김광희’의 창작곡이다. (재반에는 ‘김광희‘로 정정) 이 노래를 히트시킨 양희은과는 달리 허림의 버전은 무그 사운드가 등장하는 밴드 세션으로 편곡되어 이채롭다.
불치병 아들에 대한 애절한 모정
착한 심성을 지닌 허림은 컴백 앨범의 히트로 인해 1976년 영화 ‘내 마음의 풍차’에 출연하며 활동 동력을 획득했다. 또한 1976년 MBC라디오 상오 10시 5분 극 ‘고백’에서 ‘엄마의 얘기 편’을 통해 허림의 슬픈 이야기가 알려졌다. 성우 고은정이 허림 역을 맡았던 그 방송은 출생 때부터 심장판막증을 앓고 있는 그녀의 아들에 대한 애절한 모정을 소개해 청취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방송 이후 화제를 모으며 전성기를 맞이한 허림은 꾸준하게 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객사하고 병마에 시달리던 아들 재석이도 네 살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1년 사이에 어머니와 아들과 사별한 그녀는 상처받은 마음을 종교에 의탁했다. 비구니가 되려다 연예인 교회 집사로 활동했던 허림은 1978년 혼성 듀엣 '해와 달' 활동을 시작하며 정규앨범과 성가집 2장을 발표했다. 1980년 솔로 성가집을 발표한 이후 선교활동에 매진했던 그녀는 90년대 이후 대중의 시야에서 조용하게 사라졌다.
통기타 연주로 창을 시도했던 실험
매력적인 박인희의 서늘한 음색에 비견되는 허림은 70년대 여성 포크가수들 중 가장 애절한 감성의 포크송을 노래한 가수로 기억된다. 슬픔이 담긴 그녀의 애잔한 발성은 중독성 강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명창 김소희에게 창을 사사받았던 허림은 앨범 발표 이후 통기타 연주로 창을 노래하는 색다른 시도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재발매된 허림의 컴백 앨범이 중장년층에게 추억을 소환하는 의미를 넘어 새롭게 그녀의 노래를 접할 요즘 세대들에게 그녀의 존재가 신선하게 다가서는 계기가 마련되길 기대한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 오리지널 릴 마스터 테이프 사용
* 180g 중량반
* 24Bit/192kHz D4A Sound 디지털 리마스터링
* 오아시스 레코드 명반 재발매 시리즈
* 폴리 페이퍼 이너슬리브
* 수입 제작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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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곡
- 1-1. [Side A] 인어 이야기
- 1-2. 연꽃
- 1-3. 바람아
- 1-4. 밤하늘 가에
- 1-5. 둥글둥글 한세상
- 1-6. 밤하늘
- 1-7. [Side B] 귀향
- 1-8. 등대지기
- 1-9. 모닥불
- 1-10. 비가 내리면
- 1-11. 아침이슬
- 1-12. 세노야